내가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금강경'이었다.
그 금강경이 설해진 곳이 바로 '기원정사'다.
한국에서는 한문을 번역해서 기원정사로 불리지만, 해외에서는 제타바나(Jetavana)라고 불린다. 제타(Jeta)는 코살라국의 태자 이름이고 바나는 숲(vana)이라는 의미다.
기원정사는 부호 수닷타 장자가 세운 절이다.
수닷타 장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에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그래서 부처님이 기거하실 절을 짓기로 결심했다. 여러 곳을 찾던 중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으면서 조용한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제타 태자의 숲'이었다.
수닷타 장자는 제타 태자를 찾아가 내게 여기에 절을 지을려고 하니 이 동산을 본인에게 팔라고 했다. 하지만 제타 태자는 팔지 않겠다고 거절을 했고, 지나가는 말로 '이 동산을 금으로 채운다면 넘겨주겠다'라는 말을 흘렸다.
며칠이 지난 뒤 태자에게 '수닷타 장자가 제타 동산의 바닥 금을 깔고 있다'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놀란 태자는 수닷타 장자에게 숲을 넘겨주었고 그 두 사람의 이름을 타서 기수급고독원 줄여서 기원정사가 되었다.
추가로 기수급고독원의 의미는 제타 태자의 숲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배푸는 수닷타 장자를 줄인 의미다.
이렇게 지을 때부터의 지어진 배경이 있는 기원정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45년의 교화 여정중 19 안거를 기원정사에서 머무셨다. 암튼 엄청나게 자주 오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기원정사에서 금강경이 설해진다.
어느 날 부처님의 제자인 수보리는 아래와 같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묻는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잘 두호하며 생각하시며,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사실 불교의 경전은 아난다가 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옮긴 글이라 금강경도 수보리와 부처님의 문답형식의 긴 대화다. 수보리의 질문에 대답을 하시고는 다시 되묻고, 또 다시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이렇게 그래서 말하는 거야,라고 하시면서 엄청 자상하게 말씀하신다. 이러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세심함을 나는 경전대학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물론 이게 한국어가 아니고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라서 '희유하시다', '두호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다' 등 용어가 어렵지만, 금강경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르는 바없이 그 마음을 내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문장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구게다. 그리고 금강경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아(無我)'
아무튼간에 우리가 아는 금강경은 구마라습의 한역본으로 중국에서 금강경이 널리 퍼진 후에 양나라 소명태자가 32분으로 나눴던 것을 대부분 번역해서 보고 있다.
그리고 금강경 처음인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와 같음을 내가 들었사오니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서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듣고 사위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성안에서 차례로 걸식을 마치고 본래의 처소에 돌아와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여기서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았다고 기술이 되어 있는데, 기원정사에 간다꾸띠 뒤편에 큰 우물이 있다.
아! 부처님이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였구나!
법회인유분은 금강경의 배경 설명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 안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1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부처님의 평범한 일상에서 도를 실천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기원정사에는 간다꾸띠 앞에서 승려분들이 기도를 하신다. 간다꾸띠는 부처님이 안거 하신 건물로 간다는 향기를 뜻하고 꾸띠는 작은 집을 뜻한다. 현재는 기단만 남아 있다.
여기는 간다꾸띠 측면이다.
이 보리수 나무는 아난다의 보리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나무의 묘목을 옮겨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이곳에서 부처님께서 많이 선정에 드셨다고 한다.
이 보리수 나무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다. 나도 여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숨 가쁜 일정이었는데, 기원정사에서는 여유로웠다.
나무 그늘 아래서 명상도 하고, 자유시간도 줘서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구글 번역기로 힌두어를 촬영해서 한국어로 읽어서 곳곳마다 볼 수는 있었는데,
번역 자체가 말이 이해가 안 가서, 중간에 포기하고 공원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기원정사는 내게 가장 의미가 컸다.
참고 자료
- 정토출판,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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